○ 토론명 : 왈책 3월 독서토론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대상 도서 :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사회학 이야기』(노명우·프로네시스·2008년)
○ 일시 : 2019년 3월 22일(금) 오후 7시 30분~10시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사직동 사무실)
○ 일시 : 2019년 3월 22일(금) 오후 7시 30분~10시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사직동 사무실)
이 독서토론은 Open Group입니다.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의 위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덩어리진 기호체는 정보를 전달해 준다는 유용성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일상과 의식을 장악합니다.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샬 맥루한(Martial Mcluhan, 1911년~1980년)이 말한 것처럼 매스 미디어(Mass-media, 대중매체)는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 ‘메시지’를 주입하는 기계이며,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1995년)의 말처럼, 매스 미디어는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립니다.
매스 미디어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용자들을 무의식적인 도취나 마비 상태로 빠뜨리는 파노플리 효과(effect de panoplie)*를 낳고, 나아가 정치 권력, 자본 권력, 종교 권력 등 이런저런 권력체들이 늘 미디어를 장악해 왔습니다. 봉건지배가 끝나고 부르주아 지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공론장의 촉매제로 탄생했던 신문은 정치와 권력지향성을 담아냈으며, 발달된 매스 미디어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포드주의적 방식으로 경제적 이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경제 지향적 태도를 확산시켰습니다.
이제는 뉴 미디어 시대. 온라인에서 동작하는 개인 방송 시대를 맞았습니다. 매스 미디어 앞에서 소비자(Consumer)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이제 미디어를 소비하면서도 생산하는 프로슈머(prosumer)**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의 권력지향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잃어버렸던 우리의 능동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저런 권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이 책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사회학 이야기』(노명우·프로네시스·2008년)을 읽고, 지금 우리 사회의 사태와 상황들을 정리하고, 대안을 찾아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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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폴리(panoplie) : '집합(set)'이라는 뜻으로 '같은 맥락의 의미를 가진 것들의 집합 '을 말한다. 원래, 중세시대 기사들이 출전할 때 갖추어야할 갑옷, 장갑, 검, 창 등을 의미했다. 파노플리 효과(effect de panoplie)란 소비자가 특정제품을 소비하면 유사한 급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집단과 같아진다는 환상을 같게되는 현상을 말한다.
**프로슈머 (prosumer) : 생비자(生費者), 생산 소비자.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 1980년 엘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생산자적 기능을 수행하는 소비자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