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잘 가라 2020년이여, 걱정 말고 잘 가거라.

by 이우 posted Dec 30, 2020 Views 4121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릴때사진_900.jpg

  고향에 내려와 새벽에 잠 깼다. 책을 열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다.

  "세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세계는 기표작용하기 시작했고, 기의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주어졌다. 당신 부인이 당신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늘 아침 수위가 당신에게 행운을 빌면서 세무서에서 온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 다음 당신은 개똥을 밟았다. 당신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당신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항상 기표니까. 기호를 참조하고 있는 기호는 이상한 무력함과 불확실함의 급습을 받지만 사슬을 구성하는 기표는 강력하다. 편집증 환자는 탈영토화된 기호의 무력함을 나눠가지며, 탈영토화된 기호는 미끄러지는 대기 속 사방에서 그를 공습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대기 안으로 퍼져나가는 그물망의 주인처럼, 성난 왕 같은 기분으로 기표의 초권력에 더욱더 다가간다. 이는 편집증적 독재 체제이다. 그들은 나를 공격하고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들을 앞서간다. 나는 항상 알고 있다. 나는 무력할 때조차 권력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갖게 될거야.'
  이런 체제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끝이 나지 않는다. 이는 그걸 위해 만들어졌다. 이 체제는 무한한 빚의 비극적 체제이며, 모든 사람은 채무자이자 채권자이다. 하나의 기호는 자신이 옮겨가는 다른 기호를 참조하며, 이 기호는 도 다른 기호들로 가기 위해 기호에서 기호로 나른다. '순환해서 회귀해도 좋으니까….' 기호들은 단지 무한한 그물망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호계들의 그물망은 무함히 순환적이다. 언표는 대상보다 오래 살아 남고, 이름은 이름의 소유자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기호는 다른 기호들로 옮겨 가거나 잠시 다른 기호들에 의해 보존되거나 하면서 자신이 의미하는 기의나 자신이 지칭하는 사태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기호는 사슬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상태, 새로운 기의를 투여해 거기에서 추출되어 나오기 위해, 짐승이나 죽은 사람처럼 튀어오른다. 영원회귀의 인상을 품긴다. 거닐기를 좋아하고 떠다니는 언표들, 멈춰 서 있는 이름들, 결국 회귀하겠지만 일단은 사슬을 따라 앞으로 돌출되기를 기호들의 체계가 있다. 탈영토화된 기호의 자기 잉여로서의 기표여, 장례식장 같은 공포 가득한 세계여."

    -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 새물결 · 2001년 · 원제 :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80년), <5. 기원전 587년 및 서기 70년-몇 가지 기호 체제에 대하여> p.219~220

  "대상보다 오래 살아남고", "소유자보다 오래 살아남는" 기표, 2020년이여,  잘 가라. 잘 가거라, 걱정 말아라. "새로운 상태, 새로운 기의를 투여해, 추출되어 나오기 위해", 새롭게 "앞으로 돌출"하는 2021년이 있으니까. 2020년이여 잘 가라, 걱정 말고 잘 가거라.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라.









  1. 10
    Oct 2021
    16:20

    [안내] 마라톤 연습. 대회가 열리거나 말거나 달려 본다

    COVID-19로 대회가 열리거나 말거나, 그냥 달려 본다. 2021년 한강 언저리에서,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 달려서, 심술 궂은 겨울 찬바람이 막아설 때까지, 일주일에 한 두번은 달려볼 작정이다. 앞서는 자는 유재철(훈련 대장)이고, 뒤따르는 자는 이우(안전...
    By이우 Reply0 Views1960 file
    Read More
  2. 22
    Jul 2021
    16:06

    [안내] 제18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신청 안내

    에피쿠로스 구성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18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을 안내드리고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18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이란, 평생학습에 대한 열정과 실천을 통해 성과를 이룬, 더불어 이러한 성과를 주변과 나누는 평생학습인과 기관...
    By이우 Reply0 Views3284 file
    Read More
  3. 06
    May 2021
    21:01

    전위예술가 이불(李昢, Lee Bul) 전시회 『시작(Beginning)』

    어찌하다보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위예술가 이불(李昢, Lee Bul, 1964년~현재) 전시회 『시작(Beginning)』(전시 기간: 2021년 3월 2일~5월 16일)을 보고 왔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고 하는, 보고 싶지 않은, 존재하지만 무시하...
    By이우 Reply0 Views2919 file
    Read More
  4. 06
    May 2021
    08:07
    No Image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힘에의 의지)'는 무엇인가?

    “권력의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자신이 곧 생명인데 도대체 어떻게 살기를 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지배의 욕구와도 관계가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과연 누가 지배의 욕구를 욕구라고 부르기를 원하는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이우 Reply0 Views3192
    Read More
  5. 22
    Apr 2021
    09:04
    No Image

    원한 감정(르쌍띠망, Resentment)

    파괴적인 의지를 가지면 내 좌절된 욕구에 대한 원인을 타자에게 찾으며 타인을 원망하거나 타인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런 감정을 "원한(르쌍띠망, Resentment)"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파괴적인 의지를 가지면"이라는 전제된 조건에 주의해야 ...
    By이우 Reply0 Views5256
    Read More
  6. 21
    Apr 2021
    10:31
    No Image

    폭력적인 예술가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잠재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이 자유를 향한 본능은 오로지 자신에 저항하여 분출할 수 있을 때까지 뒷걸음치면서 뒤로 밀리고 안을 향하게 된다. 이 자유를 항한 본능이 양심의 가책의 유일한 기원이다. 이 모든 현상이 너무나 쓸쓸하고 고통스...
    By이우 Reply0 Views3780
    Read More
  7. 07
    Feb 2021
    01:15

    지층(strate)

    "원시적인 머리, 크리스트 얼굴, 그리고 자동유도장치들, 이렇게 세 가지 상태에서 끝나야 하는가? 더는 없고?"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1995년)가 이렇게 물었다. 오래전에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5년경~1337년)는 그림으로 답했...
    By이우 Reply0 Views4134 file
    Read More
  8. 02
    Jan 2021
    10:26

    어서 오라 2021년이여, 환영한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2021년이여, 어서 오라. 환영한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By이우 Reply0 Views3134 file
    Read More
  9. 30
    Dec 2020
    04:17

    잘 가라 2020년이여, 걱정 말고 잘 가거라.

    고향에 내려와 새벽에 잠 깼다. 책을 열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다. "세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세계는 기표작용하기 시작했고, 기의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주어졌다. 당신 부인이 당신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늘 아침 수위...
    By이우 Reply0 Views4121 file
    Read More
  10. 04
    Nov 2020
    04:52
    No Image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운명애: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지식』(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7년).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는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와 ‘...
    By이우 Reply0 Views369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46 Next
/ 4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