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가 생사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가 사람들을 죽게 할 수도 살게 내버려둘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중략) 결국 그들이 살 권리와 죽을 권리를 갖는 것은 전적으로 군주에게 달려 있다. (중략)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권리란 결국 죽일 수 있는 권리이다. 군주가 삶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오로지 그가 죽일 수 있는 순간에 한해서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칼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삶의 권리와 죽음의 권리는 대칭이 아니다. 그것은 살게 내버려 두거나 죽게 내버려 두는 권리가 아니라,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리이다. 이것이 명백한 대칭성이다. 19세기 정치적 권리의 가장 큰 변화의 가운데 하나는 군주의 권리―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를 새로운 권리로 대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새로운 권리는 구(舊)권리를 지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침투하고 관통하고 정반대의 권리, 아니 차차리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 되었던 것이다. (중략)
이미 17세기와 18세기에 법률가들이 삶과 죽음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었다. 그들과 다음과 같이 의문을 표했다. "사회계약의 수준에서, 다시 말하면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주권을 형성하고, 한 군주에게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했을 때, 그들은 왜 그렇게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어떤 위험이나 빈곤에 의해 급박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들이 하나의 군주를 만들어낸 것은 자신들의 삶의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실질적으로 군주의 권한 속에 있는 것은 삶이 아닐까? 즉 군주의 권리를 정초하는 것은 삶이 아닐까? 그런데 군주는 실제적으로 자기 신민들에게 삶과 죽음의 권리를, 다시 말하면 그저 죽음의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 계약의 최초의 근본적인 동기였으므로 결코 계약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17세기와 18세기초에 주로 개인의 신체에 집중된 권력기술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인의 신체를 공간적으로 배치(분리·정렬·조별(組別) 분류·감시)하고 이 개인의 신체들 주변에 가시성의 영역을 설치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런 테크닉에 의해 권력은 이제 인체를 떠맡아 훈련과 단련을 통해 그 유용한 힘을 과도하게 평가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권력의 긴축적인 절약과 합리화인데, 이 권력은 감시와 등급·조사·서류 작성·관계들의 체계에 의해 최소의 비용으로 행사되었다. 이 모든 기술을 우리는 노동에 대한 규율적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17세기말과 18세기 중에 정착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새로운 어떤 것이 생겨났는데, 이번의 권력 기술은 규율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규율적인 권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끼워넣고 통합하고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자기 안에 그것을 이식해서 사용하고, 그 앞서의 규율적 기술 덕분에 거기에 효과적으로 고착되는 그런 기술이다. (중략) 규율적이 아닌 이 새로운 권력기술이 적용되는 영역은 신체를 상대하는 규율과는 달리 사람들의 생명이다. 인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種)으로서의 인간(homme-espece)을 상대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보면, 규율은 다수의 인간들이 감시와 훈련·이용·처벌의 가능한 개체로 해체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다수의 개인들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정착한 기술은 다수의 인간을 상대하기는 하되, 그것이 개체로 요약된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이 다수가 모든 생명 고유의 과정안 출생과 사망·출산·질병 등 인류 전체의 과정에 영향 받는 글로벌한 전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이다. 그러므로 개인화의 모델에 따라 권력이 인체를 장악한 후 두번째로 시도된 권력의 인체 장악은 개인화가 아니라 전제화였으며, 다시 말하면 육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종(種)으로서의 인간을 향해 행해지는 권력이다. 18세기에 이루어진 인체에 대한 해부-정치학 이후 더 이상 해부-정치학이 아닌 어떤 것이 나타났는데, 나는 이것을 인종에 대한 '생물정치학'이라 부르고 싶다.
현재 정착하고 있는 이 새로운 권력기술, 즉 생물정치학·생물권력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그것을 한두 마디로 간단하게 말했었다. 그것은 출생과 사망의 비율, 재상산의 비율, 그리고 인구의 생식력 등 과정의 총체이다. 모든 정치적·경제적 문제들과 함께 출산율·사망률·평균 수명 등의 과정이야말로 18세기 후반기에 앎의 첫번째 대상이었으며 생물정치의 첫번째 목표였다. 이 현상들을 계량화하여 처음으로 인구통계학을 마련한 것이 이때였다. 인구의 출생률과 관련된 이 과정들에 대한 관찰이 얼마간은 자발적이고 얼마 간은 계획되어 아주 효과적으로 시행되었다. 18세기에 유행하던 산아제한현상에 대한 조사가 그것이다. 그것은 또한 출산 현상의 개입을 통한 인구정책의 시발이었다. 이런 생물정치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생식력이 아니었다. 질병에 걸릴 확률 또한 문제가 되었는데, 그것은 중세 초기 이래 정치권력을 한없이 괴롭혀 왔던 그 유명한 전염병의 수준에서가 아니었다.
18세기말에는 전염병이 아니라 다른 것이 문제였다. 거칠게 말하면 풍토병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 다시 말해서 인구 안에서 주로 말생하는 질병들의 형태와 성격·확장·지속·강도 등이 문제였다. 이 병들은 근절시키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치사율이 높다고 해서 전염병으로 대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이 질병으로 인한 치료비 부담이나 생산력 부족 때문에 노동력이 감소되고, 노동 시간이 단축되며, 활력이 떨어지고, 경제적 부담이 늘어난다는 지속적인 요인―이 질병에 대한 대책도 이런 방향에서 이루어졌다―들이 고려되었다. 요컨대 질병을 인구형상으로 본 것이다. 더 이상 생명을 갑자기 덮치는 죽음―그것은 전염병이다―으로서가 아니라, 삶 속에 미끄러져 들어와 끈질기게 그것을 파먹고 점점 작게 만들어 마침내 그것을 악화시키는 그러한 점진적인 쥭음으로서의 질병인 것이다. 18세기기말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료행위의 조정과 정보의 집중, 앎의 규격화와 함께 공중보건을 주임우로 하는 의학을 만들어 냈다. 이 의학은 전인구의 의료화와 보건교육 캠페인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출산·출생율·사망률 등이 문제였다. (중략)
19세기초(산업화의 시기)부터 능력과 활동의 영역에서 탈락하는 개인 또는 노화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다. 사고로 인한 불구와 여러 가지 신체적 비정상도 역시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였다. 이 생물정치가 민민구제기관들(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만이 아니라, 전체적이면서도 허점이 많아 조잡하기 짝이 없는 교회의 구제제도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합리적이고, 훨씬 섬세한 메커니즘을 정착한 것도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고려에서였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보험이나 개인 또는 집단 저축이나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훌씬 합리적이고 섬세한 메커니즘을 갖게 될 것이다. (중략)
마지막 영역(18세기와 19세기초에 나타났던 원칙들을 열거했는데, 그후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은 종(種)으로서의 인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 환경 사이의 관계이다. 인간의 생존을 형성하는 환경은 지리적·기후적인 것만이 아니고 수로(水路)도 포함되는데, 예컨대 19세기 전반기의 전염병들은 늪지대와 긴말한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자연적인 환경만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환경도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도시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관해 생물정치를 탄생시킨 몇 가지의 사례들, 권력과 앎이 처음으로 개입된 영역들을 예로 들어 보겠다. 개입은 출산율과 사망률, 다양한 생물학적 무능력, 그리고 환경의 영향에 대해서 이루어졌다. 생물정치는 이 모든 것에서 자신의 앎을 선취하여 권력 개입의 장을 규정했다. (중략)
-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976,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미셸 푸코 (지은이), 박정자 (옮긴이) · 동문선 · 1998년 · 원제 : Il Faut Defendre La Societe, 1997년) p.278~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