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명 : 왈책 6월 독서토론 『잊기 좋은 이름』
○ 대상 도서 : 『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 열림원 · 2019년)
○ 일시 : 2020년 6월 19일(금) 오후 7시 30분~10시 30분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www.epicurus.kr) 사직동 사무실
○ 진행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김희정
이 독서토론은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는 Open Group입니다.
"나를 부른 이름", "너와 부른 이름", "우릴 부른 이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 이름은 타자(他者, Others)*를 불러주거나 타자에 의해 불리워지기 위해 있는 것이지,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호명(呼名)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소이(soi, 自己)나 모이(moi, 自我)**가 아닙니다. 타자(他者, Others)의 얼굴입니다. 작가 김애란은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말합니다(『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열림원. 2019년). 이들이 우리를 있게 했습니다. 이들 이름이 없었다면 그만 둘 일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자의 편'입니다. '죽은 자의 편'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힘들고 어렵게 살아 가고 있는 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갈 자'의 편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갈 자'의 편이라 편하고 쉽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대지 안에 이름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 "나를 부른 이름", "너와 부른 이름", "우릴 부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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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他者, Others) : 자신이 알 수 없는 '그 누군가'.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 1905년~1995년)는 서양의 자아 중심적 철학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했다. 서양철학은 '다른 이(타자)에 대해 거의 체질적으로 거부 현상을 보이는 철학으로 '다른 이'와 '다른 것'을 나(자아)로 환원하거나 동화하고자 했다고 보고 있다. 레비나스는 "인간의 삶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가지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책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서양 전통철학이 무시한 여러 주제들, 다시 말해 쾌락과 신체성, 노동과 거주, 여자와 아이의 존재, 고통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 모이(moi, 自我)와 소이(soi, 自己) : 모이(moi)는 사고, 감정, 의지, 체험, 행위 등의 여러 작용을 주관하며 통일하는 주체, 즉 자아(自我)를 말한다.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초현세적인 세계관에서는 '영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소이(soi)는 신체적인 자기(自己)를 말한다. 한자에서 '기(己, 몸 기)'는 형이하학적인 사물인 '신체로서의 나'를 뜻하고 '아(我, 나 아)'는 사고, 감정, 의지, 체험, 행위 등의 여러 작용을 주관하는 나, 즉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나'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