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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혹은 집단수용시설 : 구조주의

by 이우 posted Jun 15, 2020 Views 690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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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혹은 집단수용시설
-구조주의

   1942년생인 아버지는 손자들이 유치원에 입학하자 당신도 '유치원'에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유치원요?"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유치원에 가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유치원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그러니까 값비싼, 그러니까 부유한 사람들의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특권적인 교육시설이었습니다. 대대로 가난한 집에서 유치원에 다녔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치원에서 글도 배우고 나무로 만든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아버지는 일본 북해도에서 태어난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일본으로가 광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흐릿한 기억에 따르면, "돈 벌러 갔습니다". 일본의 어디에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광부가 되었고, 일하러 나가면서 아버지를 당신이 말씀하시는 '유치원'에 맡긴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다른 조선인 광부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에서 ‘놀았습니다’. 

  "일본어도 배우고 나무로 만든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이치, 니, 상, 시, 욘, 고, 로쿠, 시치, 나나, 하치…“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나면 리듬을 타면서 일본어로 숫자를 외웁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갈 때는 두 분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일본에서 태어난 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배를 탔다고 흐릿하게 기억합니다. 

  1984년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깊게 넣어 두었던 종이 한 장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전표였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일본 기업의 전표…. "돈을 받아야 한다.“ 할아버지는 돈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그건 유치원이 아니고 탁아소이거나 아이들 집단수용시설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버지는 '유치원'이라고 우겼습니다.
  "유치원이다. 그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군의 부역자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일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그곳’은 '유치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유치원'이라고 말하는 그곳은 조선인 징용자들의 아이들을 수용한 '집단 수용 시설‘입니다. ‘그곳’은 유치원일까요? 집단수용시설일까요? 나는 지금도 구조주의(structuralism, 構造主義)를 말할 때 사람들에게 "그곳은 유치원일까? 집단수용시설일까?"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하곤 한다.
 
  "여기 하나의 건물, 즉 벽돌로 쌓아 올리고 스레이트 지붕을 가진 하나의 건물이 있습니다. 세 살에서 여섯 살 또래의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놀이를 할 수 있는 구조물입니다. 여기는 유치원일까요? 일하고 월급을 받았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직장인이었을까요?”

  사태는 이렇습니다. 각 항의 위상학적인 위치를 모르면, 부역장이 직장이 되고 집단수용소가 유치원이 되는 겁니다. 나의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그 위상학적인 위치를 몰랐습니다. 강제징용된 광산은 직장이었고 아이들 집단수용시설은 유치원이었죠. 그러나 위상학적인 위치, 그러니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 속에 관계되어 있는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면 사태는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일제강점-태평양전쟁-조선총독부의 전시 총동원령이라는 항들과 관계된 나의 위치를 알면, 직장이 부역장이 되고 유치원이 집단수용시설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주체(主體, Subject)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계의 중심이고 나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타자(他者, Others)들을 모르면, 그러니까 구조((structure, 構造)를 모르면 우리는 부역하고 있는 지, 유치원인지, 집단수용시설인 줄 모르게 됩니다. 푸코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사유하는 인간이기를 그만 두고서 사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철학적 웃음으로밖에는 대답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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