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별이 주의적인 경우에, 즉 이미지-기억들이 현재적 지각에 규칙적으로 결합하는 경우에, 지각은 기억들의 출현을 기계적으로 결정하는가, 아니면 기억들이 지각 앞으로 자발적으로 향해 가는가? (...)
외적 지각이 실제로 우리에게 그것의 핵심적 윤곽을 그리는 운동들을 야기하는 반면, 우리의 기억은 받은 지각 위로 그것을 닮은, 그리고 우리의 운동들이 이미 소묘를 한 바 있는 과거의 이미지들을 향하게 한다. 이처럼 기억은 현재적 지각을 새롭게 창조하거나 또는 오히려 현재적 지각에 그것의 고유한 이미지나 동일한 종류의 이미지-기억을 보냄으로써, 그것을 이중화한다. 만일 상기된 이미지가 지각된 이미지의 모든 세부 사항을 덮는데 이르지 못하면, 다른 기지의 세부사항들이 와서 미지의 세부사항들 위에 투사될 때까지 기억의 가장 심층적이고 가장 멀리 있는 지역들에 호출을 던진다. 그리고 이런 작용이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기억은 지각을 강화하거나 풍부하게 하고, 한편 지각은 점점 전개되면서 자신 쪽으로 점증하는 수의 보충적 기억을 끌어당긴다. (...)
유명한 연구에서 우리가 단어들을 문자 하나하나씩 읽는다고 주장했던 그라셰(Grashey)에 반대하여 이 실험자들은 일상적인 독서가 진정으로 예측의 작업이며, 우리의 정신은 여기저기서 몇몇 특정한 성질들을 모으면서 모든 간격을 이미지-기억들에 의해서 보충한다는 것을 확립했다. 이미지-기억들은 종이 위에 투사되어 거기 실제로 새겨진 활자들을 대치함으로써 우리에게 이 활자들에 대한 착각을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창조하거나 재구성한다. (...)
결국 개인적이고 정확히 국재화된 이미지-기억들은 계열을 이루며 우리의 과거 존재의 흐름을 그려주고, 함께 통합되어 우리 기억의 최후의 가장 넓은 외곽을 구성한다. 이 이미지-기억들은 본질적으로 달아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단지 우연적으로만 규정되어 그것들을 유혹하건, 이 태도의 비결정적 자체에 의해 그것들의 변덕스러운 출현이 자유롭게 일어나게 되건 간에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외곽은 내부의 동심원인 원들로 조여지고 반복되며, 이 원들은 더 좁혀질수록 동일한 기억들을 감소된 형태로 지탱하고 있다. 이 기억들은 개인적이고 원본적인 형태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일상적 현실에서는 현재적 지각에 점점 더 잘 적응하며, 개체를 포괄하는 종의 방식으로 그것을 점점 더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축소된 기억이 현재적 지각 속으로 아주 잘 삽입되는 순간이 도래하는데, 이 때 사람들은 어디서 지각이 끝나고, 어디서 이것이 시작되는지를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기억은 그것의 표상들을 변덕스럽게 나타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대신에, 신체적 운동들의 세부 사항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 이미지-기억들이 운동에 더욱 접근하고 따라서 외적 지각에 접근할수록, 기억의 작용은 더 높은 실용적 중요성을 얻게 된다. 지나간 이미지들이 있는 그대로, 즉 그것들의 세부 사항 전체와 정념적 색채까지 동반하며 재생된다면, 그것은 몽상 또는 꿈의 이미지들이다. 우리가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기억이 수축되거나 또는 차라리 예리해진 것이어서 자신이 파고들어갈 경험에 칼끝을 들이댈 뿐이다. 사실 사람들이 기억을 떠올릴 때 자동적인 특성을 오해하고, 때로는 과장했던 것은 기억으로부터 운동적 요소를 분간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실제로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선 그것의 소리를 식별하고, 다음에는 그것의 의미를 찾아내고, 결국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다소간 멀리 밀고 나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주의의 모든 단계들을 지나, 기억의 잇따르는 능력들을 행사하는 것이다. (...) 우리는 말의 청각적 식별에서 1.감각-운동적인 자동적인 과정, 2.이미지-기억들의 능동적인, 말하자면 원심적인 투사를 부여주어야 할 것이다. (...)
-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송 · 아카넷 · 2005년 · 원제 : Matiere et memoire, 1896년) p.173~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