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회] 놀이는 감각과 정신 사이 ·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는 중간 지층

by 이우 posted Mar 27, 2017 Views 305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호모루덴스.jpg


   (...) 우리의 시대보다 더 행복했던 시대에 인류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감히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우리 인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인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물건을 만들어내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faber(물건을 만들어내는)라는 말이 sapience(생각하다)라는 말보다는 보다 명확하지만, 많은 동물들도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말 역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모든 인간의 행위를 "놀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대의 지혜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을 천박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형이상적 결론(놀이는 천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리라. (...)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문화의 정의는 다르다. 아무리 개략적으로 문화를 정의한다 할지라도 인간사회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문화가 있다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 사회가 놀이를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놀이를 해왔다. 우리는 아주 안전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놀이의 일반적 개념을 놓고 볼 때, 인간의 문명은 아무런 본질적 특징을 보태준 것이 없다.

  동물들은 인간과 똑같이 놀이를 한다. 강아지들이 즐거운 놀이를 유심히 지켜보면  거기에 인간의 놀이에 깃든 본질적 측면이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아지들은 어떤 일정한 자세와 동작을 취하면서 상대를 놀이에 끌어들인다. 네 형제의 귀를 물어서는 안 된다. 물더라도 세게 물어서는 안 된다 등의 규칙을 지키면서 즐겁게 논다. 강아지들은 짐짓 화난 체하기도 한다. (..) 개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기적으로 경주를 하거나 멋진 공연을 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동물 수준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 할지라도 놀이는 생리적 현상 혹은 심리적 반사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놀이는 순수한 신체적 · 생물적 활동의 영역을 훌쩍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심장한' 기능인데, 부연해서 말해 보자면 놀이에는 어떤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놀이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놀고 있는데(작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생활의 즉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 행동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모든 놀이는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놀이의 본질이 '본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에 놀이를 가리켜 "의지", 혹은 "의도"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무 많이 말해 버린 것이 된다. (...)

  심리학과 생리학은 동물, 아이, 어른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묘사하고, 설명한다. 이 학문들은 놀이의 본질과 의미를 결정하고 그것이 일상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부여한다. (...) 놀이를 특정 기능을 구사하려는 내적 충동, 혹은 남을 지배하고 경쟁하려는 욕망 등으로 해석했다. 다른 학자들은 해로운 충동을 발산시키는 배출구 역할을 하는 "발산"으로 정의했다. 일방적인 행위로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는 것. "소망 충족". 개인적 가치의 느낌을 유지시켜 주는 허국적 개념 등으로 보는 해석들도 있다.  이러한 가설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놀이는 놀이 자체가 '아닌' 어떤 것에 봉사하고, 생물적 목적을 갖고 있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

  위에 제시한 여러 설명들에 대하여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알겠다. 하지만 놀이하기의 '재미'란 어떤 것인가? 왜 어린아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가? 왜 도박사는 도박에 몰두하는가? 생물학적 분석으로는 이런 놀이의 열광과 몰두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열광, 몰두, 광분 등에 놀이의 본질 혹은 원초적 특징이 깃들어 있는데 말이다.

  자연은 잉여에너지의 발산, 힘든 일 이후의 긴장 완화, 장래의 일에 대비한 훈련, 충족되지 못한 동경의 보상 등을 위해서라면 기계적 운동이나 반응 등을 그 자녀들에게 제공하고 만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자녀들에게 진장, 즐거움, 재미 등을 갖춘 놀이를 제공했다. 이 나중에 언급된 요소, 즉 놀이의 '재미'는 각종 분석과 논리적 해석을 거부한다.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볼 때, 어떤 심리적 범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놀이가 벌어지는 현실은 인간 생활의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합리성에서 그 기반을 찾으려는 것은 무리이다. (...) 놀이라는 현상은 문명의 특정 단계나 특정 세계관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요한 하위징아 · 연암서가 · 2010년 · 원제 : Homo Ludens : a study of the play element in culture, 1938년) p.20~33












  1. 20
    Apr 2017
    16:16

    [사회] 무관심의 절정 : 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허무가 있는가?

    (...) 장보드리야르 : (...) 차이라 함은 다른 문화들이 자신들의 독특성으로부터 소멸된다는 점, 즉 이것은 아름다운 죽음인 반면에 우리는 독특성 자체의 상실로부터, 우리의 모든 가치들의 전멸로부터 우리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행한 죽음이죠.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685 file
    Read More
  2. 09
    Apr 2017
    02:41

    [사회] 소비의 사회 :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 육체

    (...) 소비대상의 파노폴리 중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고 귀중하며 멋진 사물, 모든 사물의 요약적 표현이며 자동차보다 훨씬 더 많이 함축하고 있는 사물이 있다. 그것은 육체다. 오랫동안 계속된 청교도주의 시대 이후에 육체 및 성(性)의 해방을 표방...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9630 file
    Read More
  3. 09
    Apr 2017
    00:23

    [사회] 소비의 사회 : 대중예술과 팝아트

    (...) 이미 본 바와 같이, 소비의 논리는 기호의 조작으로 정의된다. 창조의 상징 가치도, 상징적인 내면적 연관도 그곳에는 없다. 소비의 논리 전체가 외면성에 존재한다. 사물은 객관적 목적성과 기능을 상실하고 여러 가지 사물의 좀더 폭넒은 조합의 한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8201 file
    Read More
  4. 08
    Apr 2017
    20:09

    [사회] 소비의 사회 : 대중문화와 매스커뮤니케이션

    (...) 퀴즈의 기능은 훈련(사회자와 매스이디어의 이데올로그들은 항상 그렇게 주장하지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본래의 기능은 도대체 무엇인가? 티를리포의 경우 분명히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기능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어...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9160 file
    Read More
  5. 07
    Apr 2017
    23:00

    [사회] 소비의 논리 : 개성화·차이화=몰개성화·집단화

    (...) "자기만을 위해 특별하게 설계된 세탁기를 꿈꾸지 않은 가정주부가 있겠습니까?" 어느 선전은 이렇게 묻는다. 사실 어느 주부가 그것을 꿈꾸지 않겠는가? 따라서 수백만 명의 가정주부들은 각각 자기만을 위해 특별하게 설계된 '똑같은' 세탁기를 꿈꾸...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54868 file
    Read More
  6. 07
    Apr 2017
    18:19

    [사회] 소비이론 : 사물과 욕구 · 소비영역

    (...) 경제학자에게서 욕구란 효용이다. 소비를 목적으로한, 즉 재화의 효용을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러저러한 특정 재화에 대한 욕구이다. 따라서 욕구는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재화를 통해 터음부터 이미 어떤 목표-끝에 행해지며, 선호(選好)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20684 file
    Read More
  7. 07
    Apr 2017
    05:05

    [사회] 생산성의 증대 · 경제성장으로 풍요로와질 수 있을까?

    (...) 살린스에 따르면 수렵채집자들(오스트레일리아, 칼라하리 사막 등에 살고 있는 미개 유목민 부족들)은 절대적인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풍요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미개인들은 어떠한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에 집착...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8210 file
    Read More
  8. 01
    Apr 2017
    18:19

    [사회] 놀이와 명예 : 포틀래치 Vs 선물 의례

    (...) 놀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으로 승리가 있다. 승리하기는 경쟁자 혹은 적수를 상정한다. 혼자서 하는 놀이에는 승리가 없으며 그 놀이에서 거둔 소기의 효과를 가리켜 승리라고 할 수도 없다. '승리하기'는 무엇이고 '승리했다'는 무엇인가? 승리하기...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9545 file
    Read More
  9. 27
    Mar 2017
    21:31

    [사회] 놀이는 감각과 정신 사이 ·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는 중간 지층

    (...) 우리의 시대보다 더 행복했던 시대에 인류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감히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우리 인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30518 file
    Read More
  10. 13
    Mar 2017
    22:10

    [사회] 미국의 개인주의 신화와 영웅주의

    (...) 17세기 영국의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의 유명한 이야기, 19세기 에머슨(<자립>), 소로(<시민불족종>), 휘트먼(<나의 노래)> 등이 내세운 개인주의 찬가, 20세기에 오면 순응주의에 맞서는 일반 시민의 투쟁을 찬양한 셔유드 앤...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2710 file
    Read More
  11. 12
    Mar 2017
    11:15

    [철학]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아를르캥(arlequin)

    “자신의 부분들, 장소들, 지역들, 종들 속에 자기가 채워 넣은 다채로움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세계란 없다. (...) 어미 소와 그 송아지가 다르듯 다른 개체와 동일한 개체는 없다. (...) 각종 동물들이 자기들에게 알맞은 영양소를 섭취하듯 결코 동질의 부...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9105 file
    Read More
  12. 05
    Mar 2017
    19:51

    [사회]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직업 개념

    (...) 이미 독일어의 '직업(Beruf)'이라는 단어에, 그리고 아마 좀 더 분명하게 영어의 'calling'이라는 단어에 종교적인 내용―즉 신으로부터 받은 임무―이 적어도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며, 이 말은 구체적인 경우에 강조하면 할수록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3535 file
    Read More
  13. 05
    Mar 2017
    19:15

    [사회]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 시간이 돈임을 잊지 마라. 매일 노동을 통해 10실링을 벌 수 있는 자가 반나절을 산책하거나 자기 방에서 빈둥거렸다면? 그는 오락을 위해 6펜스만을 지출했다 해도 그것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 외에도 5실링을 더 지출한 것이다. 아니 갖다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3550 file
    Read More
  14. 27
    Feb 2017
    18:37

    [사회] 위험사회 : 부메랑 효과 · 계급사회와 위험사회

    (...) 위험은 위험을 생산하거나 위험에서 득을 보는 사람들도 따라잡을 것이다. 위험은 사회적 부메랑 효과를 보이면서 확산된다. 즉 부자나 권력가들도 그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 부메랑 효과는 삶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337 file
    Read More
  15. 27
    Feb 2017
    16:59

    [사회] 위험사회 : 부의 분배와 위험의 분배

    (...) 부처럼 위험은 분배 대상이며, 양자는 지위 즉 각각 위험지위와 계급지위를 구성한다. 하지만 양자는 각각 아주 다른 재화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 분배에 관한 논쟁도 아주 다르다. 사회적 부의 경우에는 소비재, 수입재, 수입, 교육 기회, 재산 등이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6301 file
    Read More
  16. 20
    Feb 2017
    12:06

    [역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1 : 역사란 무엇인가?

    (...)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지나간다. 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잡을 수 있다. "진리는 우리에게서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켈러(Gottfried Keller, 1819년~1890년)의 말은...
    Category역사 By이우 Views17548 file
    Read More
  17. 20
    Feb 2017
    12:00

    [역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2 : 기억과 역사, 혹은 역사가, 역사 서술

    (...) 인식 가능성의 지금에 섬광처럼 스치는 과거의 이미지는 그것의 추가적 규정에 따라 볼 때 하나의 기억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는 위험의 순간에 등장하는 자신의 과거 이미지들과 유사하다. 이 이미지들은 주지하다시피 비자의적으로 나타난다. 따라...
    Category역사 By이우 Views13976 file
    Read More
  18. 15
    Jan 2017
    11:51

    [철학] Platon_ idea Vs simulacre

    idea Vs similacre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291
    Read More
  19. 15
    Jan 2017
    11:41

    [철학] Platon_Sokrates-Atlas Philsophie

    Sokrates-Atlas Philsophie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859 file
    Read More
  20. 15
    Jan 2017
    11:39

    [철학] Platon_Philosophie Atlas

    Philosophie Atlas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108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