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인문학기행팀(신촌·분당) 및 게스트
○ 모인 시간 : 2013년 6월 22일(토요일) 오후 3시
○ 모인 장소 :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 헤어진 시간 : 2013년 6월 22일(토요일) 오후 6시
○ 헤어진 장소 : 대학로 학림다방
○ 사진 촬영 테마 : 이데올로기
↑ 열여섯번째 <서울을 걸어 인문학을 만나다>, 대학로를 걸었습니다. 대학로의 역사는 조선태조 7년(1398년)에 지금의 국립대학 격인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을 설치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시대에 숭교방 동쪽이라는 의미로 동숭(東崇)동으로 행정구역이 개명되었으며 일제 치하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교육령>에 따라 <경성제국대학>이 설치되고, 해방후 경성제국대학은 1946년 8월 <국립종합대학안(國立綜合大學案)>에 따라 국립 <서울대학교>로 정식 발족하게 됩니다.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이주하기 전까지 대학본관(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관)을 비롯하여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현 마로니에공원과 아르코미술관 일대), 의과대학(지금의 서울대학병원)이 대학로에 있었으며, 그 때부터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젊음과 낭만의 거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학로를 '문리대길'이라 불렀으며, 그 길에는 조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서울대 학생들은 그 하천을 '세느강'이라고 불렀습니다.
↑ 4.19와 유신반대 등 학생운동도 이곳 문리대길인 대학로가 중심이었습니다. 옛 조선시대 유생들이 불의를 못 참고 울분을 토하던 그 거리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자유와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운동의 터전이 되었고, 학문과 자유를 수호했던 젊은이의 정신이 숭교방(崇敎坊)에서 대학로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학로는 소비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과거 순수함과 낭만이 있었다면 이제 대학로는 소비 공간으로 거리가 채워지면서 상업성이 자리합니다. 많은 소공연장이 생겨나 다행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연극 역시 순수의 범주가 아니라 상업성 아래에서 만들어지고 공연되고 있습니다.
↑ 소설가 활동일의 말처럼 이제 학림다방은 "소비문화의 바다에 떠 있는 고립된 섬"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까페가 그러했듯 당시 다방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담론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생성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번 기행의 주제는 이데올로기. 학림다방에서 김광균과 김민기, 홍세화의 방명을 만나고, 우리 사회를 관통하며 흘러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이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 규정짓는 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의식의 형태인 이데올로기(ideology). 이데올로기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의식의 덩어리들이다. 오롯한 '나'로 서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희망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그리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주체(Subject)다. 그러나 푸코의 지적처럼 많은 부분 우리는 구성된 주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또 알 튀세르나 지젝의 지적처럼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객체(Object)가 될 수 있기 때문에(이데올로그) 수동성을 벗어나서 자신을 구성할 수 있는 능동성을 회복해야만 우리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개입은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단독성을 함축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 이우의 <이야기가 있는 인문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