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인문학기행팀 · 게스트
○ 모인 장소 : 전철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 모인 시간 : 2012년 12월 8일(토요일) 오후 3시
○ 헤어진 장소 : 명동성당
○ 헤어진 시간 : 2012년 12월 8일(토요일) 오후 6시
○ 사진 촬영 테마 : '나'를 구성하는 것들
12월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일행은 신세계백화점(옛 미쓰코시백화점)을 출발하여 한국은행(옛 조선은행)과 포스트타워(옛 경성우체국), 조선호텔(옛 철도호텔), 명동을 거쳐 명동성당에 이르는 약 2.5Km의 소공동 길을 걸었습니다. 이 길 위에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자본주의, 근대화, 식민지 경험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는 화폐. 조선 정부의 허락도 없이 제일은행권을 시장에 유통함으로써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일제의 경제 침탈 전략 앞에 무력했던 당 시대인의 이야기는 과거로 이야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일본 제일은행의 화폐가 미국 달러로 대치되었을 뿐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일행은 일제에게 강점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뼈 아픈 역사의 흔적 환구단(?丘壇, 사적 제157호)을 찾아 나섰습니다. 19세기 말, 세계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변해 있었고, 우리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향해 마수를 뻗치고 있었습니다. 국제질서가 급격히 재편되는 것을 지켜보던 고종은 마침내 자주독립의 의지를 세웁니다. 그 의지의 표현이 환구단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하늘의 아들(天子)이 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고 조선과 일본을 제후국으로 인식했던 중국, 그리고 자신을 천황의 나라로 여기고 조선과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 제국주의. 환구단은 그들 앞에서 우리나라가 천자(단군)의 나라라고 선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1910년 8월 22일 합병조약(한일합병)이 조인됨으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일제는 1913년, 원구단을 강제 철거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조선호텔의 전신인 철도호텔을 세웁니다.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정원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일행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사 중이었지요 ㅠㅠ.
신세계백화점에서 명동을 거쳐 명동성당에 이르는 이 길을 소공동길이라 부릅니다. 19030년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도꾜 긴자를 방황하는 것처럼 이 거리를 부유했습니다. 당시 무작정 근대 상품을 흠모하면서 이 길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몽유병자와 같다해서 일본말로 ‘혼부라'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혼부라' 무리들이 부나비처럼 이 길을 따라 휩쓸려 다닌 것처럼 이제는 현대적인 상품이 진열된 명동 거리로 우리가 몰려다닙니다.
일행은 명동예술극장(옛 시공관)을 지나 명동성당으로 향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종현 천주교당으로 불리었던 명동성당은 1898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입니다. 명동성당에는 1880년대 '성성활판소가 설치되어 <경합잡지>, <경향신문>이 간행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의 집회장소로 자주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외래에서 이식된 종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일제가 환구단을 강제 철거하듯이 우리나라가 천자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단군상을 더러 과격한 사람들이 훼손하는 것을 보면 쓸쓸합니다.
이번 탐방 테제는 <나를 구성하는 것들>입니다. 근대 철학에서 '나(주체)'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철학에서의 '나'는 세상의 중심, 혹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며(라캉), '나'는 이데올로기의 호명을 받아 주체가 됩니다(알 퉤세르). 소공동 산책로에는 일본강점기 이후 약 100여년간의 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시·공간은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합니다. 지금의 '나'는 오롯하게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시·공간이 구성해 놓은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며 삽니다.